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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憲問10>或問子産, 子曰: "惠人也." 혹문자산, 자왈:혜인야... 본문

14헌문憲問46

<14憲問10>或問子産, 子曰: "惠人也." 혹문자산, 자왈:혜인야...

haagam3 2025. 2. 5. 16:29

 

或問子産, 子曰: "惠人也." 問子西, : "彼哉! 彼哉!" 問管仲, : "人也, 奪伯氏騈邑三百, 飯疏食, 沒齒無怨言."

(혹문자산, 자왈: "혜인야." 문자서, 왈: "피재! 피재!" 문관중, 왈: "인야. 탈백씨병읍삼백, 반소식, 몰치무원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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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或問子産(혹문자산); 或者가 子産의 인품을 묻자

-子産자산; 초나라 公子 申의 字. 楚나라 令尹영윤, 즉 재상을 지냈다.

 

ㅇ子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ㅇ惠人也(혜인야); 은혜로운 사람이다.

-惠人혜인; 남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 남을 사랑하고 아낀 사람. 어진 사람.

 

ㅇ問 子西,曰(문자서,왈); 자서에 관해서 묻자 말씀하시기를

-子西자서; 楚나라 昭王의 庶兄(庶母의 형, 정실에게서 난 아들이 첩에게서 태어난 형을 이르는 말. )인 公子 申임. 그는 소왕에게 임금의 자리를 양보하고 정사를 바로잡은 현명한 대부였으나, 왕이라는 칭호를 쓰는 것을 시정하지 못했고, 소왕이 孔子를 등용하고자 했으나 반대했다. 鄭나라 대부 公孫賀공손하라는 설도 있음

 

ㅇ彼哉!彼哉!(피재피재); 저 사람이여. 저 사람이여.

-그 사람은, 그 사람은(그져 그렇다)

-彼哉피재; 그사람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다, 별 것 아니다. 그져 그렇다. 상대를 무시할 때 상투적으로 쓰는 관용어이다.

 

ㅇ問管仲,曰(문관중,왈): 管仲관중에 대해 묻자 말씀하시기를

-管仲관중; 성은 管제, 이름은 夷吾이오. 자는 仲. 공자보다 200년 전에 살았던 사람. 齊나라 桓公환공의 대부로 桓公을 도와 내정을 개혁하고 국력을 증강시켜 桓公을 霸者패자의 위치에 오르게 한 명재상(팔일편22 참조)

 

ㅇ人也, 奪 伯氏 騈邑 三百(인야,탈백씨 병읍 삼백); 인물이다. 伯氏의 騈邑병읍 3백호를 빼앗았는데,

-人也인야; 인물이다. 훌륭한 사람이다.// (朱熹) “이 사람은”으로 풀음.

-伯氏백씨; 齊나라 대부. 이름은 偃언.

-騈邑병읍; 齊나라 당이름. 백씨의 식읍으로 지금의 산동성 임구臨朐에 있었음.

 

ㅇ飯疏食(반소사); 백씨는 거친 밥을 먹었으나

 

ㅇ沒齒無怨言(몰치무원언); 평생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沒齒無怨言몰치무원언; (늙어서) 이가 빠지도록 원망하는 말이 없다.

-沒齒몰치; ‘이빨이 빠지다.’ 늙어 죽음을 때까지, 목숨이 다할 때까지, 평생동안.


혹자가 공자에게 물은 자산, 자서, 관중의 인물됨에 대한 총평이다.

子産자산은 엄격하고 혁신적이면서도 백성들에게 널리 은덕을 베푼 어진 정치인으로 정나라 백성들의 추앙을 받았으므로 그가 죽었을 때 공자가 눈물을 흘렸다.

 

子西자서는 초나라의 공자로 平王이 죽은 뒤 昭王에게 왕위를 양보했으니 인품이 훌륭하다 할 수 있지만, 정치적 역량이 대단치 않았으며 또한 소왕이 공자를 중용하려 할 때 그것을 저지했다. 그러므로 공자는 그의 평가를 유보한 것이다.

 

공자는 관중에 대해서는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았으나 그의 정치적 공적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다. 백씨가 관중 때문에 식읍을 빼앗겼지만 관중의 공을 인정하고 자신의 죄를 시인했으므로 평생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

 

공자는 이 사실을 들어 관중을 평가했다. 평소 공자는 관중은 예를 모른다, 그릇이 작다(팔일22) 등으로 貶視폄시했으나, 환공이 제후를 규합하는데 무력을 쓰지 않은 것은 관중이 공으로 그가 아니면 우리는 오랑캐가 되었을 것이다(헌문18)라고 말하기도 했다. 관중의 인격적 결함에도 정치가로서의 수완과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