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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백독
<06雍也16>子曰: 不有祝鮀之佞 불유축타지녕 본문
子曰: “不有祝鮀之佞, 而有宋朝之美, 難乎免於今之世矣.”
(자왈: “불유축타지녕, 이유송조지미, 난호면어금지세의.”
ㅇ子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ㅇ不有祝鮀之佞(불유축타지녕); 祝官인 鮀타 같은 말재주나
-不有祝鮀之佞; 축타처럼 뛰어난 언변이 없다.
-祝鮀축타; 위나라의 대부로 자가 子魚자어. 그는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축문을 읽는 祝官의 관직에 있었기에 祝鮀축타라 함. <左前좌전·定公四年정공4년>의 기재에 의하면 그는 말재주가 뛰어나 昭陵소릉에서 제후들이 회합할 때 蔡채나라를 衛위나라보다 두려하자 위나라의 시조 康叔강숙을 내세우며 논쟁을 벌여 위나라를 상위에 둘 수 있도록 했다. 공자는 이를 높이 평가해 衛靈公이 그의 무도한 행위에도 불구하고 임금의 자리를 잃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로 꼽았다.(헌문19 참조)/
-鮀(모래무지 타), 佞(말 잘할 녕)
ㅇ而有宋朝之美(이유송조지미); 宋송나라의 朝조와 같은 美貌를 갖고 있지 않다면
-而有宋朝之美이유송조지미; 송조처럼 아름다운 외모만 있다해도
-宋朝송조; 송나라의 公子로 朝는 그의 이름. 위나라 대부로 있을 때 襄公양공의 부인 宣姜선강 및 靈公영공의 부인 南子남자와 사통한 적이 있다.
☞而를 與로 보고 풀었으나, 다양한 해석이 있다.
ㅇ難乎免於今之世矣(난호면어금지세의); 요즘(의 혼란한) 세상에 화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乎호; 음절조정 어기조사
-免(면할 면); (화나 재앙을) 모면하다.
-矣의; 필연의 결과를 표하는 어기조사.
축타는 뛰어난 말재주로 나라의 위급을 구한 바 있다. 그러나 美男인 宋朝송조는 南子남자와 私通사통했으며, 그녀 덕분에 위나라의 대부가 된 사람이다. 송자는 다만 외모 하나로 난세에 출세를 하고 나라의 기강을 문란케 한 상류층의 비리를 개탄하고 있음.
논어를 통털어서 공자는 언변이 뛰어난 사람을 꺼려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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